만화를 그대로 옮기려 노력한 씬 시티는 그 독특한 영상에 홀린 듯이 2시간을 쉽게 보낼 수 있는 영화다. 쉽고 즐겁게 해주는 만큼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에 어떤 메시지가 전혀 없다. 그냥 그래서 그랬어요. 그랬대요~ 그래도 색감은 특이하죠? 정도의 영화.
흑백의 바탕에 색을 넣으니 치트키 친 것처럼 강조하기가 매우 편해진다. 다만 씬에 색이 들어가면 '그것'만 보이는 문제도 있다. 피, 눈동자, 옷, 기타 등등.
특이한 설정이 딱 하나 있다. 매춘부의 도시. 여성의 힘으로 자치를 하고 있다. 심지어 치안과 경제도 자주적으로 운영하는데 매춘으로 도시 경제를 돌린다는 설정이 매력적이다. 여자의 힘으로 전부 해내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중추에 뿌리박힌 남성의 성욕이 정체인 도시. 여성을 조롱함과 동시에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관능미가 어우러진다. 싫어도 싫어할 수가 없다. 공동체 없이 인간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여자 없이 살 수 없다.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의 죽음은 이기적이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낸시가 피해를 입을 것이고 구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 자살을 택한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처럼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 줄꺼야 하면서 죽는다. 어떤가? 내 생각엔 멍청한 짓이다.
나 때문에 위험해진다. 나는 로크를 이길 수 없다. 내가 없어져야 낸시가 안전해진다. 모두 하티건 개인의 생각이다.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결국 내 생각이 맞으니까 죽어야 한다 라는 확신보다 '낸시의 안전'을 1순위로 하였을 때 가장 편안한 수를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지 편하려고 자살.
기억하자. 힘든 건 내가 죽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남이 죽을 때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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