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반에서 브라질 사람과 채식주의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말하느라 참 어려웠다.
'눈 코 입 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죄이다'
'식물도 생명이다'
'움직이지 않는 건 먹어도 된다'
'식물도 움직인다'
'앞으로 난 뭘 먹으라는 거냐'라는 표정을 지은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도 '옥자'를 봤을까?

논쟁거리가 많아 보이는 영화라 한번 정리해보았다. 정답이 없는 생각할 거리가 6가지는 되는 것 같다.
1. 왜 우리는 남을 먹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한 이 영화의 핵심이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데 배는 고프다. 안 죽으려면 남을 먹어야 한다. 인간은 양립하는 가치가 서로 싸우게 되는 저주를 받았다. 배는 고프고 먹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먹을게 나랑 비슷한 두 눈 달린 지적 생명체라니. 현대 자본주의는 일임해서 도축을 하기 때문에 더 심해진다. 자신이 먹으려고 생명을 죽이질 않기 때문이다. 남을 먹도록 진화한 생물이 사랑하는 객체를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면서 오는 정신질환적 증상. 남을 먹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동물을 먹는 게 '가능'하다. 그러니까 보신탕 먹는다는 얘기를 하면 욕을 먹는 것이다. 개는 개가 아니라 우리 '애'라고 하지 않는가? 애도 안 낳으니 개가 애로 보이는 증상은 더 심해졌다.

2. 옥자를 사랑한다? (가족 구성원)
수많은 '옥자'들을 냅두고 내 '옥자'만 찾는 건 매우 정상적인 행동이다. 내 친구, 내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뭐가 다르겠는가? 만약 우리를 먹으려는 다른 종, 혹은 외계인이 있다면 말이다.

3. 품종 개량한 돼지로 값싸게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유전자 조작이다?
유전자 조작에서 한술 더 뜬다. 아예 새로운 돼지다. 돼지인지 하마 인지도 모르겠다. 쌍둥이 언니가 마케팅을 그만두고 생산에 집중하며 자신이 비즈니스를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건 영화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을 식용으로 팔겠다는데 기존 돼지나 소와 경쟁력을 갖추려면 친근해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돼지를 키운 10년(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동안 동생이 마케팅을 해왔겠지만.
4. 전 세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건 옳은 일인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구 전체 입장에서는 어떨까? 70억 명의 인간을 수용하는 게 마땅할까?
5. 식물은 되고 동물은 안된다?
식물도 당연히 반응을 한다. 자신의 신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인지하고 어떤 물질을 뿜어낸다고 한다. 좀 과한 표현인 것 같지만 '식물도 자신이 살해당했고 먹히고 있다는 걸 인지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 중간에 토마토는 안 먹으면서 아스파라거스는 먹는 장면이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이다. 토마토는 식물의 열매라 '먹으라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6. 개나 고양이 등 우리가 기르는 동물보다 지능이 뛰어난 동물을 먹는 것은 죄인가? (보신탕이 문화인가?)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키우던 닭 목 비틀어 죽여서 닭백숙은 해 먹는데 옥자는 가족이다. 그래서 안된다. 개도 마찬가지다. 보신탕이 그래서 안된다. 싸울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먹을 것이 누군가에겐 나의 자식 같은 존재니까.

봉준호 감독이 신선한 주제로 흥미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방식이 항상 따분하다. 설명을 진득하게 앞뒤 전부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로 보인다. 영화 만들면서 만나는 타인들을 리드하려면 절제가 필요할 텐데 거기서 오는 인내심의 한계를 영화로 푸는 것 같다. 아니 영화에서 만큼은 자신의 본색을 숨기지 않는다고나 할까? 절대 양보 없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자세한 설명. 회의실 잡고 세 시간씩 설명하고 싶은데 그러면 누가 자신의 말을 따르겠는가? 슬슬 도망 다니지. 그게 답답한지 영화에선 항상 길게 설명한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든다는 생각은 드는데, 재미가 없다. 괴물 빼고. 괴물은 진짜 재밌다. 러닝타임 좀 줄이고 더 긴박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봉준호가 영화를 만들면 죽기 전까지 계속 볼 거니까.
저녁엔 돼지고기나 볶아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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