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비겁함
돼지같은 인간의 비겁함
육체에 갇힌 돼지의 비겁함
하나의 육체에 갇힌 돼지의 어쩔수 없는 비겁함
돼지들의 비겁함에 대하여
회사를 그만둔 지 5년이 되었다. 오랜만에 예전 직장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그중 돈을 많이 내는 선배가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1. 이 사람이 만나자고 할 때 만나고,
2. 이 사람의 직장 혹은 집 근처로 가며,
3. 이 사람이 가자는 술집으로 간다.
돈의 법칙이다. 돈 많이 내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권리를 가진다.
취기가 돌자 이 선배는 5년전과 똑같이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 가고 싶어 했고 우리는 가지 말자고 했다. 2차에서 비몽사몽 술을 먹던 중 갑자기 이 선배가 영상통화를 하더니 자기 아내와 딸과 우리 일행을 인사시키고 이후 어느 양주 파는 술집으로 데려갔다. 백수인 나와 결혼 못한 다른 선배를 '상석'에 앉으라며 안쪽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요상한 노래방 기계를 부르고 여자들과 위스키 몇 잔을 들이켰는데 140이 나왔다며 100은 자기가 내겠다고 한다. 나는 지갑을 꺼내 10만 원 주려고 하자 나중에 달라고 했다. 이 행동이 맘에 안 들었는지 이 선배는 나를 강압적으로 집에 가라고 했다. 또 술집 종업원들은 마치 짠듯이 모여들어 (내 집 위치를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까지 가는 택시는 너무 외져서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술에 너무 취해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어서 가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별이었다.
영상통화로 부인을 속이는데 나를 이용한 이 선배, 술에 취해 헤롱헤롱 거리며 그 술집에 들어간 나와 주변인들, 맘에 안들자 집에 가라는 선배, 그걸 고분고분히 집으로 간 나. 여기서 소위 '인간'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이 영화는 시작부터 매우 탁월하다.
'나는 훌륭한 소설가라 원고는 컴퓨터 따위로 안쓴다. 나는 펜으로 진짜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내 이름 박힌 원고지쯤은 있어야지. 니들이 뭘 알아? 원고료나 줘 이따 섹스하러 가야 돼. 아 이런 밥 먹다 원고에 김치 국물 흘렸네 닦아야지..'
이게 무엇이 하는 생각 같은가? 사람인가? 돼지인가?
식욕과 성욕은 가장 본능적이고 강렬한 생물의 욕망이다. 시작부터 먹고 섹스하는 '효섭'을 보여주며 인간=돼지라는 공식을 증명해 낸다. 다음엔 우물에 빠지는 돼지들의 피치못할 운명을 무미건조하게 보여준다. 너무 꾸밈이 없어서 실제로 내게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극의 모든 인물들은 아주 위선적인데 그걸 다루는 방식이 매우 현실적이라 보는 내내 즐거웠다.
특히 '동우'의 가족사진 보고 나서 매춘부와 섹스하고 콘돔이 찢어졌다며 울부짖으며 씻는 장면,
집에 돌아와 "내가 오해했어. 너는 깨끗한 여자야" 라며 부인과 섹스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이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감독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지점을 아주 섬세하게 영상으로 옮겨 담았기 때문이다. 당시 자신의 나이대에 있는 소위 예술한다는 돈 없는 청춘들, 돈 좀 있다고 다른 사람 무시하는 사람들이 겪었거나 실제 봤던 갈등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또한 나의 어릴 적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만나게 해 주었다. 친척 누나네 가면 꼭 있던 시계, 책상, 식탁들 거리에 차들 간판들 사람들 옷차림이 90년대 중반이다. 이것만으로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효섭이 화분에 벌레를 가지고 놀고, 동우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장면도 명장면이다. 이제 30대 중반인 그들은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나 자신을 보면 어쩌면 애 일지도?
갈등을 죽음으로 해소 했다는 건 다소 아쉽다. 그냥 치트키 아닌가? 강렬함도 주고 결말도 제공하는 편한 끝맺음.
또 이 영화는 송강호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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