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의 영화. 이들은 마지막까지 서로의 피부를 탐닉했고 부둥켜안는다.
카메라로 표현 가능한 사랑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작품. 서로의 종교, 직업, 가족, 정체성을 송두리째 뽑아 내던지고 피부를 부비고 포옹하며 제대로 된 사랑을 하다가 불타는 사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불타 재가 되어 스러지는 삶을 살아낸 뱀파이어들. 이들은 그들의 어머니 앞에서 죽음과 동시에 결혼한다.
언뜻 보면 어머니 라여사에게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상당한 복수를 선사한 것 같지만, 이 영화는 복수가 아닌 사랑과 죽음, 독립에 대한 영화다. 신기루 같은 가짜 아들 강우(신하균)를 죽여 독립을 하고 엄마, 라여사(김해숙)를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불타 죽는 사랑.
비록 지옥에 갈지언정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한 것에는 반대할 여지가 없다. 이들의 사랑은 촉각과 죽음으로 어머니에게 회귀한다.
또한 가부장제 이후의 사회에서 사랑은 종전과 다른 것도 보여준다. 라캉은 남성은 어떤 대상을 바라고 여성은 그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랑의 주체는 남성의 물질적 탐욕의 능동성이고, 거기에 여성은 그 물질이 되기를 수동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라캉은 이의 원인을 가부장제에서 찾았는데, 사회도 변했고 이 영화에서도 변한 여성을 잘 보여준다. 남성을 매료시킨 물질을 찾아 소유하려는 게 아니라 태주 자신을 해방시킨 즉, 자신을 매료시킨 구두를 받아 들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주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해줬건만 세상은, 현상현은 사랑을 잘 모른다. 이제 겨우 저 답답한 감옥 같은 한복집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사랑도 얻었는데. 자유를 준 사람이 죽자고 하는 거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하였지만 결국 체념하고 기꺼이 나를 위해 죽어준 여자. 자유의 징표로 선물한 신발을 털털하게 신는 모습은 태주가 상현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결속, 진정한 사랑으로의 인도를 의미한다.
※ 영화 [박쥐]에 대한 주관적인 분석, 해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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