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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공수래공수거 짓밟는 자본주의

 

 

 한 미국 보수 유튜버는 사회주의자인 학생과 토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쓰지 않을 6개의 요트를 소유하는 걸 반대하는 거야?"

 

 쓰지 않을 건데 가지고 싶어 자기 돈으로 요트를 6개 사서 소유하는 걸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나는 저 질문이 자본주의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한다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 쓰지 않을걸 소유하는 건 정상적인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은 1800년대에도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CAPITALISM.

 현시대 사회의 거대한 약속이자 종교이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는 더욱 가혹하다. 다른 민족을 노예로 부리고 땅을 빼앗고 유린한 민족이 자기들 더 잘 살기 위해 만들어서 그렇다.

 

 

 대한민국은 그런 의미에서 미국 자본주의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옆집에 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우리는 아느니만 못한 서먹함속에 살아간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 세계 최고의 개인주의 국가가 되었다. 삶이 즐거운가? 20년 전 이웃사촌 캠페인을 하던 국가도 언제부턴가 손을 놓아버렸다. 자칭 좌파 우파 세력이 너나 할 것 없이 미국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진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능력이 있어서 할 수 있는걸 마음껏 하는 걸 개인의 자유라고 포장하고 정점에 서기 위해 모여드는 불나방들.

불나방이 되기 전에 우리는 환경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몇십 년이나 더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불타 죽어도 거부할수 없는 유혹

 

 

 

 정점에 선 불나방에 관한 영화 '시민 케인'.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는다.

2022년에 처음 본 내 주관적 입장으로 그냥저냥 볼만한 수준의 훌륭한 영화였다. 그냥 '공수래공수거'를 표현한 영화. 물론 20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심지어 주연까지 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훌륭한 촬영기법과 시각효과(분장), 시간을 과거 회상에 따라 배치하는 등. 내 기대가 너무 컸다. 내 삶을 송두리째 뽑고 바꿔 버릴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를 안고 두근거리며 봤으니까. 그냥 봤었어야 했다.

 

 

훌륭한 영화인건 자명하다.

 

 

 

 

줄거리

 

 케인의 마지막 유언 같은 말인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신문사 기자들이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한다. 케인과 관련 있는 사람을 만나면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와 시간이 교차한다. 궁극적으로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찾는 걸 영화의 주 뼈대로 전개한다.

 

 

영화 초반, 로즈버드라고 말하고 죽으며 함께 보여주는 스노우 글로브.

 

 

 그 과정에 자본주의의 허무함과 위험성을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케인을 악마 같은 자본으로부터 구하지 못한다. 자칭 하나뿐인 친구도 두 명의 아내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 사실 구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주인공이 될 권리를 가진다. 나머지는 따를 뿐. 내 생각에 케인을 구할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명 있었는데, 바로 그의 엄마다. 케인은 입양된 이후에 주기적으로 생모를 만났어야 했다. 그나마 두 번째 아내 (수잔 알렉산더) 와의 사랑은 매우 진실되게 시작했지만 그녀도 남편 앞에선 수동적인 인형 신세가 될 뿐이었다. 불쌍한 구세대 여성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한번쯤은 있기를 바란다.

 

 결국 두 번째 아내마저 떠나고 자신을 속인 자본주의의 산물들, 그녀의 물건들을 부순다. 개인적으로 값어치 있어 보이는 조각상 같은 것들을 함께 부셨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다가 스노우글로브를 발견하는데, 어릴 적 눈 내리는 집에 놓고 온 썰매가 떠오른다.

 그는 나지막이 '로즈버드'라고 읊조린다.

 

수잔의 물건을 부수다 찾은 스노우글로브. 수잔은 그를 구할 수 있었던 진정한 사랑이었다.

 

 

 

ROSEBUD

 

 하지만 입양을 가게 되면서 썰매는 거기서 멈춰버렸다. 자본주의의 화려함에 속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다 간다. 소위 헛 산 것이다. 자본주의는 헛 산 것을 또 속여서 숨겨버린다. 그 누가 케인이 헛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의 저택과 수집품들만 봐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케인의 수집품들. 자본주의는 인간 욕심에게 총을 쥐어 준다.

 

 

 로즈버드는 케인 인생의 전환기 이전의 기억의 상징. 진정한 자신이다.

로즈버드가 적힌 썰매는 마땅히 내가 성장시키고 가꾸었어야 할 내 유년을 상징한다. 

참 어렵다. 그냥 살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 저 썰매를 제대로 누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렇게 덮어두고 죽을날이 다가오면 깨닫게 된다. 헛 살았다고.

 

 

 

 당시에 미흡했던 새로운 기법들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영화 자체에 깊은 생각할 거리를 준 완벽에 가까운 명작.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하다.